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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명창은 2006년 12월31일 국립극장의 제야 완창판소리에서 ‘흥보가’를 부르기에 앞서 “나이가 칠십이니 다시 완창을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1936년생으로 올해 72세지만, 호적에는 1939년생으로 올라 있다. 주변에서는 이 소식을 전해 듣고 ‘송 명창의 마지막 판소리 완창’이라고 이날 무대에 의미를 부여했다. 하지만 웬걸, 그는 한밤중의 소리판에서 오히려 ‘엔돌핀’이 솟구치는 것을 느끼며 “이 좋은 소리, 앞으로 더 오래 해야겠다.”고 마음먹었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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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 명창은 2000년 풍을 맞았다. 남성적인 ‘적벽가’가 장기로 알려진 소리꾼이 ‘흥보가’를 한번 불러봤더니 청중들이 그렇게 좋아할 수가 없었다고 한다.‘박수바람에 미쳐서 돌아가다 보니’ 그해에만 완창이 5차례였다. 그는 결국 11월16일 쓰러졌다. 그럼에도 자신의 표현대로 ‘덜렁덜렁한’ 오른 팔과 다리로 약속한 두 개의 공연을 마치고 나서야 입원했다.
그러는 사이 문화재청에서 한 통의 공문을 받았다. 중요무형문화재가 되려면 심사를 받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그는 그야말로 ‘목숨을 걸고’ 2001년 5월31일 ‘적벽가’를 완창하여 예능보유자에 올랐다. 가족과 제자들이 모두 죽을 것이라고 말렸지만, 그는 오히려 ‘적벽가’를 부르며 ‘이제는 살았구나.’하고 희열을 느꼈다고 한다.
●2000년 풍 맞고도 그해 완창무대 5차례 올라
전남 고흥 출신인 그는 광주에서 공옥진 명인의 아버지 공대일 선생, 성창순 명창의 아버지 성원복 선생, 김명환 명고수에게 소리를 배울 때 “박봉술의 소리가 중후한 소리라는 것을 세상사람들은 모른다.”는 얘기를 듣고 마음에 새겼다.
그는 이후 부산에 살던 박 명창을 찾아가 그곳에 눌러앉았고, 스승이 서울에 자리잡자 다시 밤기차로 오가며 배웠다. 그는 지금도 박 명창에게 ‘적벽가’뿐 아니라 ‘흥보가’와 ‘수궁가’까지 세 바탕을 물려받았다는 데 무한한 자부심을 느끼는 듯했다. 송 명창은 순천에 세워진 동편제판소리전수관에 박봉술 명창의 무덤을 이장하는 한편 동편제판소리보존회를 만들어 송만갑 명창의 자서전을 펴내고 명맥이 끊어졌던 ‘순천대사습’을 되살리는 데도 힘쓰고 있다.2006년부터는 광주시립국극단장도 맡고 있다. 송 명창은 요즘 하루에도 서너 시간씩 소리 연습을 하고 있다고 했다. 이제부터의 완창은 언제 다시 올지 모르는 하늘이 주시는 기회라는 것이다. 그는 “기운이 딸리는 것은 걱정이 아닌데 가사를 잊어버리거나, 아니리를 하면서 말더듬이가 될까 걱정”이라며 웃었다. 북은 박근영과 정항자. 전석 2만원.(02)2280-4115∼6.
서동철 문화전문기자 dcsuh@seoul.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