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다는 것은 어제의 일들과 결별하는 일
( 6월 26일 연중 제12주간 목요일-마태오 복음 7장 21-29절 )
“나에게 ‘주님, 주님!’ 한다고 모두 하늘나라에 들어가는 것이 아니다.”
오늘 복음은 참으로 제 가슴을 치게 만드는군요.
다급할 때만 ‘주님, 주님’하고 외쳐 불렀지, 상황이 조금만 완화되면,
언제 그랬냐는 듯이 너무도 자연스럽게 원상복귀하고 마는
제 지난 삶이 떠올랐기 때문입니다.
매일 말씀에 귀 기울이고, 말씀을 선포하고, 말씀을 나름대로 연구하지만,
거기까지인 경우가 많습니다.
눈만 떴다하면 버려라, 낮아져라, 내려가라, 포기하라, 크게 마음먹어라...
별의 별 말을 다 떠들어대지만, 제가 선포하는 그 말씀의 내용,
그 어느 것 하나 그대로 실행하는 것이 없습니다. 부끄럽기만 합니다.
말로는 뭐든 못하는 것이 없습니다. 말로는 뭐든 다 이루어낼 것 같습니다.
말도 자꾸 하다 보니 슬슬 늘고, 그에 따라 실속 없는 말, 거짓말,
속보이는 말도 점점 늘어만 갑니다.
고백성사 보기도 점점 부담스럽고 창피스럽습니다.
신자 여러분들과 별반 다를 바 없습니다. 10년 전에 가슴 치며, 부끄러움에
치를 떨며 고백했던 똑같은 유형의 죄를 아직도 그대로 반복하고 있습니다.
마음으로는 이제 더 이상 똑같은 악습을 없다, 수천 번도 다짐하지만,
몸이 도무지 말을 듣지 않습니다. 기가 막힙니다.
언제까지나 이렇게 부끄럽게, 지지부진하게,
진보 없이 살아갈 것인가 두렵기도 합니다.
아마도 우리는 한 평생 후회하며, 가슴 치며 그렇게 살아가겠지요.
사도 바오로께서 체험하셨던 것처럼 한 순간의 급격한 변화,
어제와의 확연한 단절을 원하지만, 우리 인간의 본성상
그런 변화나 단절을 힘든가봅니다.
아마도 천천히, 아주 천천히 우리는 비참함에서 약간 덜 비참함,
하느님 앞에서 아주 부족함에서 약간 덜 부족함으로 나아갈 것입니다.
그러다 이 세상을 하직할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들의 인생인가 봅니다.
언젠가 존경하는 소설가 신경숙씨가 한 신문에 기고한 글을 오려두었는데,
그 글이 오늘 유난히 제 눈길을 끌었습니다.
“산다는 일은 바로 어제의 일들과 헤어지는 일인지도 모른다.
그것과 헤어지고는 그것을 잃고는 도저히 견딜 수 없는 일을
도리 없이 견디고 도리 없이 지나오는 동안 견고해진 얼굴은 때로 징그럽다.
이런 봄날에 산에서 노란 산수유 꽃이나 분홍 진달래 속에서 문득 무릎이
꿇어지려고 하는 것은 이 봄날의 찬란한 아름다움 속에 소멸이 간직되어
있기 때문이다.
이 아름다움이 한 순간이라는 것을, 이 순간이 곧 지나가리라는 것을,
곧 이 아름다움을 잃을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비록 우리가 매일 스스로의 나약함으로 인해 악습을 거듭하고
수시로 죄에 떨어진다 하더라도, 그래서 정말 괴롭다하더라도 희망까지
버려서는 안 되겠습니다.
지금은 비록 캄캄해 보이지만, 지금은 비록 한심스러워 보이지만,
주님과의 끈을 끝까지 놓지 않고 살아간다면,
세월이 흐르고 흐른 그 어느 날, 나이 어렸기 때문에, 부족했기 때문에,
죄를 많이 지었기 때문에 주님으로부터 사랑을 많이 받았던 지난날을
흐뭇한 미소와 함께 회상을 날이 반드시 찾아올 것이라 저는 확신합니다.
▒ 살레시오 수도회 양승국 스테파노 신부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