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단체·음식·건강/좋은글·시·책

[스크랩] 조선시대의 괴팍한 기인 화가 최칠칠

하루를 일년처럼 2009. 3. 17. 16:08

 



조선시대의 괴팍한 기인 화가 최칠칠

영조 때 화가 최북(崔北)은 괴팍한 성격과 행동으로 기인 소리를 들었으며 천재화가로 유명했다.
최북은 특히 남의 비위를 맞추기 싫어했으며 권세의 오만함을 환멸하는 불같은 성격이었다.
전라도 무주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타고난 재능으로 환장이가 되었는데
술을 매우 좋아하였으며 행동거지가 거칠기 짝이 없었다고 한다.
그는 이름인 북(北) 자를 둘로 나눠 스스로 칠칠(七七)이라 부르기도 했는데
솔직하고 대담한 기법으로 산수화, 인물화에 능했으며
붓에 인생을 걸었다는 의미에서 호생관(毫生館)이란 호를 지어 사용했다.
그의 솜씨는 20대에 이미 알려져 영조 23년엔 사신을 따라 일본을 다녀오기도 했다.
그러나 평생을 떠돌이나 다름없이 살았기 때문에
당시 한양엔 유명한 화가들이 많았지만, 그에 대한 기록은 별로 없다.
어떤 부자가 최북에게 산수화를 청했는데
최북의 그림을 보고 '산수화를 청했는데 왜 산만 있고 물은 없소?'라고 묻자
'무식한 인간아, 종이 바깥은 다 물이야!' 라며 면박을 주기도 하고
금강산에 유람을 갔다가 금강산의 절경에 탄복하여 울다가 웃다가 하더니
갑자기 구룡연으로 뛰어드는 등 기인적인 사람이었다.
(최북을 물에서 구해준 사람들은 되려 그에게 '누가 날 건져내라고 했냐'며 혼쭐이 났다고...)
특히 그는 권세있는 자의 오만함을 못보는 성미로
어느 세도대감이 그를 불러 춘화도(당시의 에로그림..?)를 억지로 강요하자
홧김에 그 자리에서 바늘로 눈을 찔러 스스로 애꾸가 되었다는 일화가 있다.
(참고로 최북은 당대 잘나가던 다른 화가들과 다르게 춘화도를 한 장도 그리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는 나이 49세에 엄동설한에 동대문안 길에서 눈속에 선채로 얼어죽었다고 한다.
당시 신광수란 선비가 그의 모습을 시로 읊은 것이 있다.
그림 파는 최북 보소. 오막살이뿐 빈털터리.
종일 문닫고 산수화 그려 아침에 한 폭 팔아 아침 먹고
저녁에 한 폭 팔아 저녁 먹네.
평생을 속세에 얽매지 않고 술과 자연과 그림을 벗하며 옹색하게 살다갔던 그.
그의 그림과 일생에서 언뜻 득도한 천재 기인의 모습이 보이는 듯 하다.
출처 : 봉우리여
글쓴이 : 계림 원글보기
메모 : vjrkd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