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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한국의 명인/고흥출신 서예가 송정희 선생

하루를 일년처럼 2009. 12. 14. 1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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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근 SBS TV 대하사극 <왕과 나>의 타이틀 로고를 써 화제가 된 열암 송정희(菴 宋正熙) 선생을 만났다.

일명 열암서체로 알려진 그의 글씨의 특징은 전서(篆書), 예서(隸書), 해서(楷書), 행서(行書), 초서체(草書體)등 5체의 획을 한 글씨체에 다 집어넣어 개성에 맞게 조형화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이미 일본과 대만, 러시아에 널리 알려진 ‘열암체’는 서예가들이 송정희 선생의 호를 빌려 그의 독특한 글씨체를 일컫는 말이다. 산 굽이굽이를 넘나드는 듯 곡선의 부드러움과 생동감이 있어 물 흐르듯 자연스러운 것이 특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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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한국

 

특히 열암 선생의 작품은 지난 2006년 독일 월드컵 태극전사들이 입은 유니폼에 새긴 ‘투혼(鬪魂)’으로 유명하다. 이 글자는 어떤 상황에서도 끝까지 포기하지 말라는 국민의 염원을 담아낸 서체다. 새 대통령이 당선될 때마다 축하 휘호를 부탁받는 그는 김대중 전 대통령이 당선됐을 때는 ‘하늘 기운이 모이니 백성과 함께 즐긴다’는 뜻으로 ‘천기운집 여민동락(天氣雲集 與民同樂)’을, 노무현 전 대통령 당선 직후에는 ‘태양빛과 달빛이 온 세상을 비추어 만물에 혜택을 준다’ 는 ‘휘휘랑요(羲暉朗曜)’를 써서 각각 선물했다. 이명박 대통령에겐 필승의 휘호인 ‘함께 가요! 국민 성공시대’를 선사했다.

1993년 대전 엑스포 전시장, 충무공 장군 대첩비, 구례 화엄사, 낙산사 등 국내 주요 사찰과 명승지마다 그가 쓴 현판이 걸려 있다. TV 드라마 <용의 눈물><왕의 여자> <영웅 이순신> 같은 데서 사용되는 병풍이나 족자 글씨도 상당 부분 그의 작품이다. 국회칭찬포럼 출범을 기념하는 단체에는 시가 20억 원 상당의 서예작품과 시가 500만 원 상당의 작품을 증정하기도 했다.

하지만 선생은 ‘아직도 배움의 길은 끝이 없다’며 자만하지 않고, 자신을 모자란 듯이 여기는 손강영설(孫康映雪 )의 자세를 실천하고 있다. 열암 송정희 선생은 “글씨를 쓸 땐 모르지만 그 순간이 지나면 후회를 많이 하게 돼요. 인생도 마찬가지입니다.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인 것 같습니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것도 하지 않고 바라만보는 것보다는 자신이 할 수 있는 어떤 일이든 노력하여 최선을 다한다면 후회가 적지 않을까요. 예술의 길은 끝이 없습니다. 자신이 어느 정도 되었다고 여기고 최고 예술가로 볼 때가 있죠. 그때 조심해야 합니다”라고 예술에 대해 겸허한 자세를 보인다. 마음이 탁하면 제대로 된 창작물을 만들 수 없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명필은 ‘마음과 눈과 손’이 일치해야

“소리꾼이 소리를 많이 하면 목청이 가버리고, 춤꾼이 춤을 많이 추면 신경통이 옵니다. 글씨도 쓸 만하다 싶으면 어느새 늙어 손이 말을 안 듣죠. 아무리 재주가 있어도 손을 못 쓰면 무슨 소용이겠습니까. 많이 연마하는 방법밖에 없습니다. 항상 공부하는 자세로 건강이 허락하는 한 매일 글씨를 씁니다. 붓이 몸에서 떨어지면 예술의 세계도 멀어지게 되죠.”

늘 명상으로 자신의 잘못을 반추하며 마음을 다스리는 열암 선생은 규칙적인 생활로 훈련을 게을리 하지 않는다. 그는 서예에 대해 설명하기를 “마음과 눈과 손이 일치돼야 명필이 나옵니다. 만약 다 제각각이면 아무것도 안 됩니다. 소리와 춤도 마찬가지죠. 저는 소리 안에는 글씨가 있고, 글씨 안에는 소리가 있다고 생각합니다. 소리와 글씨가 서로 소재를 제공하죠. 소리 속에 글씨가 담겨 있기 때문에 거기서 작품의 소재를 취해옵니다. 특히 음악이나 서예와 같은 예술은 자신만의 개성이 살아있어야 합니다”고 말해 서예가 종합예술임을 강조한다.

그는 글씨를 쓰고자 하는 이들에게 심정필정(心情必定)의 자세를 가지고 예술에 임하기를 원한다. “예술성도 좋고, 인상도 좋고, 모든 것이 좋아서 옆에 두고 아끼며 용기를 북돋아주면 그 결실을 엉뚱한 데 써서 한스럽게 만듭니다. 상대에게 베풀면 베푸는 것으로 끝나야지, 바라는 순간 장사꾼이 돼 버리는 경우를 봅니다. 아름다움을 매 작품에 승화시키면 좋은 작품이 나오지만 욕심을 부리면 인간의 흠이 나옵니다. 심마니들이 ‘눈이 보여야 된다’고 말하는 것은 마음을 선하게 가지라는 뜻입니다.”

산과 물을 배우면 100년도 못 사는 인생, 서두를 필요가 없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눈과 손은 연마하면 될 수 있지만 마음은 깨달을 때가 있습니다. 젊음은 한때인 것 같습니다. 건강이 허락지 않아 자주 못 가지만 산을 참 좋아합니다. 왜냐면 산은 인자합니다. 그리고 물은 지혜롭습니다. 그럼에도 산은 엄청나게 풍부한 자원을 사심 없이 내주고, 아낌없이 나눠주며 그 어떤 대가도 요구하지 않죠.”

열암 선생은 언제나 자신의 세계에 갇히지 않으려고 애쓴다. 수많은 작품들을 살펴보고 좋은 것이 있으면 눈으로 각인해두었다가 글씨에 투영해 새로운 것을 창조해 낸다. 그는 ‘예술은 창조 작업이기에 무엇이든 아름답게 여기면 예술로 재창조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열암 선생은 전통은 보존만이 능사가 아니라 변화하고 계승되는 과정에서 발전해야 함을 강조한다. 그렇다고 창조를 위해 전통의 뿌리까지 바꿔야 된다는 것이 아니라 골조는 그대로 세워놓고 리모델링만 하자고 제안한다. “모든 인간사가 그렇듯 우리 만남도 예술입니다. 바로 그 만남 속에서 서예의 획과 글과 문장이 탄생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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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슨 작품을 남기냐 & 무슨 일을 했느냐’ 모두 중요하다

열암 송정희 선생은 6세 때부터 전남 고흥에서 서당 훈장이었던 송형현 선생의 조부에게 글을 배웠다. 특히 조부는 고려대 전신인 보성 전문학교 설립에 앞장선 유명인사기도 하다. 그가 본격적으로 서예가의 길을 걷게 된 계기는 서울 유학시절 부친의 벗이던 서예가 방용훈 선생 댁에서 지낸 것이 인연이 되었다.

70년대 국전에 작품을 제출했고 연이어 2년간 특선을 했다. 그리고 문인화에 특선하여 40대에는 초대작가와 심사위원자격을 얻게 되었다. 그가 주로 쓰는 사자성어는 보통 400만 원이기 때문에 글씨 값은 2호(25.8×17.9㎝) 크기 하나가 적어도 100만 원에 달하는 셈이다.

그가 평소 판소리를 비롯해 우리나라 문화예술 분야에 관심과 조예가 깊은 연유는 조부가 소리를 좋아한 관계로 사랑방에 소리하는 이들이 항상 드나들었기 때문이다. 그렇게 소리에 대한 인연으로 소리를 사랑하게 된 그는 1997년 (재)한국청소년건전문화육성재단을 설립하고 국악 장학사업과 청소년 문화전수 사업 등을 활발하게 펼치고 있다. 2003년에는 국립극장 남산 이전 30주년을 맞아 국립극장 발전기금 모금에도 동참했다.

‘청소년에게 갈 길을 인도하는 것이 아니라 그들의 길을 가도록 돕는 것이 기성세대의 몫’이라 생각하는 그는 근 10년간 국악을 전공하는 200여 명의 학생들이 혜택을 받도록 돕고 있다. 현재 초대 한민족 문화협회이사장으로서 전통·민족문화의 발전과 육성, 장학사업 추진 등을 목적으로 중요무형문화재를 비롯해 많은 예술인들을 후원하고 있다.

또한 이들을 후원하는 사회 저명인사들을 주축으로 한민족협회를 설립해 외국인 2,3세는 물론 전 세계에 우리문화 전파를 위해 노력한다. 그 외에도 대한민국 서예대전심사위원장, 동남아서예협회 심사위원장을 역임했고 한·중·일 서예가협회 한국대표와 한국전통문예진흥회장을 맡고 있어 그의 하는 일들이 녹록지 않음을 엿볼 수 있다.

그중 1999년 11월 29일, ‘고려대 100년 기념사업’ 출범식에 자그마치 200억 원 상당에 이르는 서예 작품들을 기증한 일은 그에게 남다른 의미가 있다. “고려대학교의 설립자가 할아버지의 친구 분이셨습니다. 창립 당시 할아버님께서 쌀 1,000석을 기부하셨는데, 저도 100주년 사업을 한다기에 고려대학교에 도움을 드리고자 문의했더니 마침 학교재단에서 2000억 원 비용이 필요한 상황이었어요. 미국에 모금을 하러 간다고 해서 후원금보다는 작품을 파는 것이 낫다 싶어 5,000점을 기증했습니다.”

이제는 앞으로 남은 인생은 건강하게 살면서 그동안 못했던 좋은 일을 하고 싶다는 바람이 있다. 열암 선생은 인생은 살아봐야 100년도 못 되는데 아무리 작품이 좋아도 이 세상 살면서 무슨 활동을 하고 갔는지 족적을 남겨야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이름석자를 가진 예술인의 할 일이라고 강조한다.


정직하게, 훌륭한 사람이 되라

“송정희란 이름은 ‘깨끗하고 정직하며 훌륭한 사람이 되라’고 아버지가 지어준 이름입니다. 여기에는 사회적으로 훌륭한 사람이 되기 위해 ‘정직하지 않은 길’을 가면 안 된다는 의미도 담겨 있습니다. 훌륭한 일을 정직하고 깨끗하게 하라는 가르침으로 간직하고 있습니다.”

열암 선생의 부친은 “우리 집에 오신 손님이 제일 귀하다. 오신 손님을 빈손으로 보내면 안 된다”는 생각으로 사랑방엔 찻상을, 건너방엔 항상 지나가는 걸인 길손을 위해 따뜻한 밥상을 준비해 둔다. 그러한 자세를 배운 것은 당연 그의 부모를 통해서다. 언제나 자식을 믿어주는 부친이 그가 제일 존경하는 인물이다.

그의 부족함을 탓하지 않고 그저 조용히 자식의 허점을 가려주던 아버지의 사랑이 열암 선생의 세계관에 투영된다. “자식은 부모의 생각대로만 가르치면 어긋날 수 있습니다. 꼭 해야 할 말은 한 번이면 족합니다. 자식의 모든 걸 관여하는 것보다 믿어주고 그 생각을 존중해 주려고 노력합니다. 자식에겐 ‘족하다’는 마음을 가지면 절대 피곤하지 않아요. 두 번하면 간섭이 되고 말죠. 3,40년대의 구세대가 2000년대의 신세대에게 주입해서 가르치는 것은 하지 않아도 된다고 생각해요. 단지 효도하는 법만 알려주려 합니다.”

서예에 대해서는 자식이 원치 않으면 굳이 전수하기를 원치 않는다고 말하는 열암 선생은 자신의 서체를 자식이 전수해야 된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뜻과 의만 알면 뭘 하든 예술이라고 믿는 그다.

그러나 “서예는 한국의 전통문화예술로서 앞으로 더 귀해지고 가치도 높아질 것입니다. 중국과 교류가 늘고 중국의 비중이 커지면서 한자의 필요성도 커지고 있습니다. 주변 환경이 서예가 발전할 수밖에 없는 여건입니다”고 말해 앞으로 굉장한 비전이 있는 분야임을 상기시켰다.

명필을 떠나서 무엇보다 인성교육의 중요성을 강조하는 그는 그것이 바탕이 돼야 올바른 예술의 길도 갈 수 있다고 한다. 그래서 생이 다하는 순간까지 붓을 놓지 않고 ‘오력(五力)과 오미(五美)’의 삶을 향해 전진하는 여정을 멈추지 않는다는 각오다.

심신을 닦는 데 필요한 다섯 가지 힘 ‘오력(五力)’은 신(信), 념(念), 정(定), 혜(慧), 정진(精進)을 의미한다. 그 뜻은 ‘믿음을 주는 진실함과 생각을 반드시 정하여 슬기롭고 사리에 밝게 나아가기를 힘쓴다’는 것이다. 또한 ‘오미(五美)’란 다섯 가지 아름다운 덕으로, ‘남에게 은혜를 베풀되 낭비하지 않고, 수고하되 원망하지 않고, 욕심을 갖되 탐하지 않고, 태연하되 교만하지 않고, 위세가 있되 사납지 않는 삶’을 의미한다.

음미하는 것 자체로 마음이 경건해지는 ‘오력오미의 삶’을 실천하기 위해 힘쓰는 서예가 열암 송정희 선생과 마주한 자리는 찻잔에서 우러나는 좋은 차 맛처럼 그윽하고 은은하다. 그가 넉넉히 보여주는 웃음과 선한 미소가 그대로 옮겨와 자연스레 상대의 입가에도 미소 짓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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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혼 글씨 값이 아파트 한채?’ 

태극전사들의 유니폼에 새겨진 ‘투혼’의 글씨 값은 얼마일까. 글씨 값은 서예가의 명성에 따라 좌우되기 마련.

 이 글씨를 쓴 열암 송정희(65사진)씨의 글씨는 크기에 따라 다르지만 최고가는 아파트 한채 값에 이른다. 

24일 대한축구협회에서 만난 송정희씨는 “협회 관계자가 ‘투혼’이란 글씨를 써달라고 부탁해 한글과 한자로 바로 그 자리에서 써주었다”고 밝혔다. 

그는 태극전사들이 2002 한일월드컵 4강의 신화 재현을 바라는 간절한 마음을 담아 정성껏 붓을 눌러썼고 협회 측은 흔쾌히 글을 받아 갔다. 

그는 서예대전에서 2회나 특선을 했고 서예대전 초대작가로 선정 되는 등 국내 최고로 평가받고 있다. 하지만 축구회관 한켠에 조그만 작업실을 마련한 그는 돈을 벌기위해 서예를 하지 않는다. 이 때문에 그는 ‘투혼’을 쓰고도 돈을 한푼도 받지 않았다. 

“제가 고 정주영 현대 회장의 부탁으로 그룹 사옥 초석에 글을 써주고 받은 돈이 당시 아파트 한 채 값이었어요. 지금은 여러분이 부탁을 해오지만 돈을 바라고 글을 쓰지는 않습니다.” 

대통령 당선자에게 축하 휘호를 써주는 것도 그의 몫이다. 김대중 전 대통령과 노무현 대통령 당선 직후에도 그는 글씨를 선물했다. 

그의 글씨는 대중적으로도 인기를 끌고 있다. TV드라마 ‘용의 눈물’, ‘왕의 여자’, ‘성웅 이순신’에서 사용되는 병풍이나 족자 글씨도 그의 작품이 대부분이다. 

“돈이 문제가 아니라 월드컵 무대에서 태극전사들이 제 글씨가 새겨진 옷을 입고 뛰는 것만으로도 영광이지요. 제 글씨의 기운을 받아 이번 월드컵에서도 한국이 꼭 좋은 성적을 낼 것으로 기대합니다.”

투혼’, “호랑이 머리와 꼬리 형상한 것” 

최근 태극전사의 선전이 눈부시다. 토고전 예선 첫 경기에서 통쾌한 역전승을 거뒀고, 프랑스전에선 끝까지 집중력을 잃지 않고 막판 극적인 무승부를 기록했다. 유니폼 뒤에 새겨진 단어 이름 그대로 ‘투혼’을 발휘한 것이다. 

독일로 가기 전 이천수와 정경호 등 태극전사들은 유니폼에 새겨진 “‘투혼’이라는 문구가 특히 마음에 든다”며 흡족해 했다. 그렇다면 이 글씨는 누가 쓴 것일까. 17일 KBS 2TV `가치대발견 보물을 찾아라‘가 최초 글씨를 쓴 주인공을 소개해 눈길을 끌었다.

방송에 따르면 ‘투혼’은 대통령 당선 휘호, 국내 유명 사찰 현판 등을 쓴 열암 송정희 선생의 작품이다. 그는 대한축구협회의 부탁으로 즉석에서 작품을 써서 기증했다. 

열암은 방송에서 “투혼은 몸과 영혼이 합해 완전 무장하라는 뜻이다”며 “‘투’자는 호랑이 머리를, ‘혼’자는 호랑이 꼬리와 같이 형상화 했다”고 뜻을 설명했다. 

한편 방송은 열암이 쓴 ‘투혼’의 가치를 평가했다. 

전문가는 “일반적으로 열암이 쓴 글씨는 한 글자당 약 백만원씩을 받는다”며 “산술적으로만 따졌을 때 투혼의 가치가 약 200만원 정도”라고 밝혔다. 한편으로 그는 “작가가 심혈을 기울여 쓴데다 태극전사들에 끼친 영향을 생각한다면 작품의 가치는 무한대일 것이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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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흥양사랑모임
글쓴이 : 지인리(윤진성)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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