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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크랩] 세계 15대 학살자

하루를 일년처럼 2010. 6. 14. 20:42

▶ 1. 마오쩌둥 (중국) : 7,700만명 

 

마우쩌둥 정권하에서 자행된 학살은 세계대전을 포함한 20세기의 모든 전쟁들에서

죽은 전사자들의 두 배를 넘는 수치이다. 이는 죽은이들의 이름을 밤 낮으로 읽어도 12년이 걸린다.

20세기에 세계 각 정권에 의해서 자행된 1억 7400만 명의 희생자들 가운데,

공산주의 정권하에서 죽은 사람들의 수는 1억 4800만 명이었다.

이것은 전쟁으로 죽은 3410만 명의 4배에 해당되는 것이다. 그의 고의적인 살인은

중국의 수천만의 민간인들을 의도적으로 굶겨 죽게 했던 정책을 포함하고 있는데,

이것은 히틀러와 스탈린이 살해한 숫자를 넘어 선다.

 

▶ 2. 도르곤 (청) : 5,000만명

 
명말청초시기 섭정 도르곤의 치하에서 양주에서는 무려 80만 명 이상이 죽었다.

누르하치의 아들로 태어난 도르곤은 몽골 지방을 토벌하여 그 공적으로 실력자가 되었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났을 때 조선을 정벌하였고, 황제가 갑자기 사망하자,

어린 조카를 대신해 섭정의 지위에 올랐다. 이후 명나라를 멸망시키고 중원을 장악하였다.

이후 10년 이상 강력한 섭정의 지위를 누리고 650년에 사망했다.

 

▶ 3. 요제프 스탈린 (소련) : 5,000만명 (숙청자 포함)

 

사제가 되려했던 스탈린은 결국 포악한 독재자가 되고 말았다.

자신의 손에 5천 만명의 피를 손에 묻혔던 소련의 잔인한 학살자였다.

스탈린은 압제 정치와 속임수를 이용하여 나라를 재정립했는데,

2차 세계대전이후 45년 동안 전 세계를 지배했던 냉전체제 구축에 박차를 가했다.

 

▶ 4. 서태후 (청) : 2,500만명

 

그녀는 미모와 총명함, 그리고 교활한 야심가이기도 했으며 잔인하기까지 했다.

그녀는 자신의 뇌쇄적인 미모를 이용하여 황제를 치마폭에 감싸고 권력을 얻기 시작했다.

처음엔 황족들로부터 강력한 견제를 받고 탄핵의 위기까지 몰렸으나 반격에 성공했다.

이후 그녀는 아들을 권좌에 앉히고 황실의 전통을 과감히 깨부수며 권력을 휘둘렀다.

하지만 당시는 청조말기로 외세의 침략 앞에서 나라는 바람앞의 등불이었다.

그녀는 왕권을 공고히 하고 강력한 청의 부활을 위해 죽을 때까지 몸부림쳤다.

태평 천국의 난을 무자비하게 진압했으며, 아들과 조카까지 정적으로 간주하고 독살하였다.

하지만 그녀는 너무 사치스럽고, 무모했으며, 언로를 차단한 것이 문제였다.

결국 그녀의 사치가 국고를 바닥내어, 청은 일본과 서방의 침략에 무너지고 말았다.

 

▶ 5. 아돌프 히틀러 (독일) : 2,100만명

 

히틀러는 2차 대전을 일으키고 유대인을 학살한 광기의 사나이였다.

그는 카리스마가 넘치며 명석했으며, 군대전술과 치밀한 정치책략에 능했다.

히틀러의 극악무도한 행위는 아직도 사람들을 공포에 떨게 만든다.'

그토록 고의적이고 체계적으로 한 민족 전체를 말살하려 했던 사람은 없었다.

히틀러는 하마터면 세계를 통치할 뻔한 아주 위험한 인물이었다.

 

▶ 6. 쿠빌라이칸 (몽골) 1,900만명

 

쿠빌라이는 징기스칸의 손자이며 중국을 정복하여 원나라의 초대 황제가 되었다.

당시 몽골족은 러시아 남부에서 페르시아에 이르는 유라시아 대륙의 대부분을 다스리고 있었다.

쿠빌라이는 중국 황제로 이름이 더 높지만 몽골족이 정치전통을 형성하는 데에도 도움을 주었다.
그는 이원의 원칙이라는 정치이론을 발달시켜, 국가의 권위와 교회의 위엄이 상존하도록 하였다.
그는 전통적인 중국 황제의 역할을 충실히 완수했으나, 몽골의 통치자들과 내전을 치러야 했다.
쿠빌라이를 옆에서 지켜본 마르코폴로는 그를 세계적인 군주의 전형으로 칭찬하였다.

 

▶ 7. 장제스 (중국) : 1,000만명

 

장제스에 대한 역사적 평가는 자유중국의 지도자로서 칭송을 받기도 하지만,

공산주의를 탄압하고 4.12 쿠데타를 일으킨 독재자로서도 비판을 받는다.

장제스는 국공내전에서 패한 이유가 국민당의 부정부패이었기 때문에,

중화민국의 공직자들의 부정부패를 강력한 처벌로 일소하였다.

하지만, 국민당 이외의 정당들은 형식적인 정당에 불과한 국민당 1당독재였고,

좌익에 대한 백색테러로 불리는 우익테러, 반체제인사들에 대한 탄압으로

대만의 민주주의가 늦게 뿌리내리게 한 독재자라는 비판을 받기도 한다.

▶ 8. 레오폴드 2세 (벨기에) : 1,000만명

 
19세기 말 벨기에의 왕이었으며, 오늘날의 콩고 지역을 개인 영지로 다스린 인물이다.
이 지역을 다스리면서 워낙에 가혹한 폭력을 사용하여 전세계의 지탄을 받았으며,
콩고에 들른 한 선교자는 이 지역 장관에게 '차라리 그냥 원주민들을 죽이기만 하소서'라고 
말했을 정도로 무지막지한 폭정을 펼쳤다고 한다. 결국에는 여러 열강들과 벨기에 국내 여론의 압력으로
콩고는 레오폴드 2세의 개인영지에서 벨기에 정부의 공식 식민지로 바뀌게 된다.
 
▶ 9. 김일성 (북한) : 500만명
 

김일성은 북한 공산화에 결정적 역할을 한 인물이며 민족의 비극을 초래한 인물이다.

해방 이후 북한에 들어온 김일성은 소련을 등에 업고 주변의 정적들을 가차없이 숙청했다.

1948년부터 실질적인 통치자가 된 그는 소련을 설득하여 1950년 6.25 전쟁을 일으켰다.

이 전쟁으로 400만 명 이상이 목숨을 잃었으며, 한반도는 초토화 되었다.

그는 북한을 세계에서 가장 혹독한 공산국가로 만들고 국민들을 억압했으며

주체사상이라는 해괴한 통치논리로 자신을 신격화하고 세습을 정당화시켰다.

이후 북한은 가장 폐쇄적인 통치로 세계의 최빈국으로 전락했다. 


▶ 10. 징기스칸 (몽골) : 400만명
 

징기스칸은 역사상 가장 야만적인 정복자요, 몽고 유목민의 영웅이었다.

그는 아버지가 독살당한 부족을 떠 맡아 최초로 몽골을 통일한 칸이 되었다.

그리고 뛰어난 전술을 발휘하여 세계의 절반을 정복하고 최강의 군주로 군림하였다.

오늘날까지도 그의 제국은 역사상 가장 넓은 영토를 차지했던 나라로 알려져 있다.


▶ 11. 블라디미르 레닌 (소련) : 400만명
 

세계 최초로 공산혁명을 일으킨 소련의 독재자이다.

레닌은 세계를 뒤흔드는 혁명을 일으켜 소련의 첫 번째 지도자가 되었다.

그는 마르크스와 엥겔스의 이론을 자신에게 편리하게 짜맞추었다.

당시 기아와 빈곤에 허덕이고 있는 러시아에서 그는 볼세비키당을 결성했다.

그리고 1917년 11월, 레닌은 이들을 이끌고 혁명을 일으켰고 정권을 잡았다.

가혹한 독재자였던 레닌은 공산혁명을 전세계로 확산시켰다.


▶ 12. 도조 히데키 (일본) : 400만명
 

도조 히데키(1884~1948)는 (일제침략시대의 군부 지도자이자 정치가이다.

그는 1941년 10월부터 1944년 7월까지 일본 총리를 지냈으며, 태평양 전쟁을 일으킨 전범이다.

1905년에 육군사관학교를 졸업한 그는 빠른 업무수행으로 면도기라는 별명을 얻었다.

이후 군국주의를 표방하는 통제파에 가담하여 일인자로 일본육군을 주도하게 되었다.

1937년부터 강경책으로 중일전쟁을 유도했고, 독일, 이탈리아와의 3국 동맹에도 관여했다.

1941년에는 총리대신에 올라 내각을 장악한 그는 군사독재 체제로 일본 전체를 전쟁으로 몰아갔다.

곧바로 인도차이나 침략과 진주만 공습으로 본격적인 태평양 전쟁이 발발하였다.

하지만 전황이 불리해지자, 내각을 사퇴하고 패전 소식에 권총 자살을 기도했다.

이후 그는 A급 전범으로 체포되어 교수형에 처해졌고, 1978년 야스쿠니에 합사되었다.


▶ 13. 폴포트 (캄보디아) : 300만명 (당시 캄보디아 인구의 절반)
 
최초 학살에 의한 사망자는 3분의 1이었으나, 고문의 후유증으로 나중에 사망한 사람이나
신체 불구자를 포함하면 인구의 절반이 넘는다고 한다.
이때 안경을 끼거나 손에 굳은살이 없으면 무조건 사형이 내려졌다.
그는 여기서 멈추지 않고 친베트남 인사들까지 무자비하게 죽였는데,
이 때문에 베트남이 캄보디아를 침공하는 계기가 되었다.
이후 폴포트는 크메루루즈군을 이끌고 정글속으로 달아났다.

 

▶ 14. 티투스 (로마) : 유대인 110만명

 

로마 총독이 세금 때문에 예루살렘의 신전을 건드린데서 유대반란이 일어났다.

사태는 걷잡을 수 없이 번졌고, 유대인은 로마로부터의 독립을 주장했다.

이에 아버지와 함께 반란 진압에 나선 티투스는 작전의 선봉에 나서게 되었다.

북부를 진압한 그는 마지막 예루살렘을 남겨 놓고 치열한 공방전을 벌였다.

마침내 잔인한 방법으로 진압을 완료한 티투스는 아버지의 뒤를 이어 황제에 올랐다.

 

▶ 15. 하드리아누스 (로마) : 유대인 50만명

 

로마에서 유대인의 반란은 연례행사처럼 자주 일어났고, 그 저항도 격렬했다.

유대반란이 또 다시 일어나자 하드리아누스 황제는 진압군에게 융단폭격을 명령했다.

끈질긴 유대인의 저항은 무시무시한 로마군의 포위 공격에 진압되었다.

황제는 이 기회에 유대반란의 씨앗을 없애기 위해 유대인 전원에게 추방령을 내렸다.

이후 터전을 잃게된 유대인은 2천년 이상을 방랑하게 되었다.

 

▶ 16. 이디아민 (우간다) : 30~50만명

 

우간다의 히틀러로 알려진 이디아민은 정권을 잡자마자 살인공장을 가동시켰다.

통치방식도 즉흥적이어서 살인자라 할지라도 자신의 기분만 좋으면 무죄로 방면되었다.

또 자신을 지지하지 않는 정적이나 마을 주민들은 아예 몰살시켜 버렸다.

괴기스러웠던 그는 냉장고속에 정적의 머리를 집어 넣고 보는 것을 좋아했으며

처형된 시체를 악어에게 던져 주는 등 그가 학살한 사람은 무려 50만명에 이르렀다.

결국 권좌에서 쫓겨난 그는 사우디에 숨어 살다가 매독에 걸려 비참하게 죽었다.

출처 : THIS IS TOTAL WAR
글쓴이 : 임용관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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