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가 지상에 나타났을 때 말의 조상은 이미 사라지고 아시아와 아프리카 쪽에 조금 남아 있었는데, 오늘날 가축화된 말의 시조는 중앙아시아에 살고 있던 것이라고 한다.
우리나라에서는 경기도 광주와 경북 문경지방에서 석기시대 말의 치아가 발견되긴 했으나, 말이 가축으로 길러진 것은 청동기시대로 알려지고 있다.
우리나라의 토종말은 제주도 조랑말로서 비록 체구는 작지만 강인한 체질이며 순하고 영리하다. 토종말 외에도 고려시대에는 몽고가 한동안 제주도에서 말을 사육하여 군마로 쓰기도 하였다. 조선시대에 이르러 김만일이라는 사람이 있어서 우리 말의 좋은 혈통을 보존키 위해 우수한 숫말의 귀를 잘라 표시하거나 한쪽 눈을 보지 못하게 했다는 기록도 있다.
우리 문헌에 말이 처음으로 등장하는 것은 《삼국유사》와 《삼국사기》이다.
신라의 박혁거세 탄생설화를 보면, 백마(白馬)의 울음소리를 듣고 가보니, 백마가 알을 품고 있다가 승천하면서 큰 알을 하나 두고 갔는데, 그 알에서 박혁거세가 태어난 것으로 되어 있다. 이 밖에도 후백제의 견훤 탄생설화 등 신성한 탄생을 주제로 한 설화에는 백마가 곧잘 등장한다. 여기서 말은 지상과 천상을 이어주는 신령스러운 교촌자 역할을 맡고 있다.
말은 십이지 동물 가운데 조류인 닭과 상상의 동물인 용과 함께 하늘을 날 수 있는 신성한 서수(瑞獸)로 그려졌는데, 그 대표적인 예가 신라 고분인 천마총 벽화이다. 벽화의 주인공은 날개 달린 천마(天馬)다. 천마는 지상에서 이룰 수 없는 희구(希求)를 담고 있다. 천마는 하늘의 옥황상제가 타고 다니는 것으로 되어 있다. 지상의 말에 날개를 달아 천상을 날게 한 상상은 우리 민족의 말에 대한 신앙을 단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그래서 우리 민족은 예로부터 소나 돼지, 심지어 개고기까지 먹으면서도 말고기는 먹지 않았으며, 말이 죽으면 따로 무덤까지 만들어 주었다. 경기도 파주 윤관 장군 묘역을 비롯하여 전국 여러 곳에 말 무덤이 있다.
말은 십이지 동물 가운데 용호과 함께 튼튼한 육체와 활기 넘치는 정력의 화신으로서 희망과 밝은 미래를 약속해주는 존재로도 자리잡았다. 속담에 '말 가는데 소도 간다'는 말이 있듯이, 말은 우두머리요, 지도자요, 선구자를 상징한다.
실제로 우리의 민속놀이인 윷놀이에서도 말은 으뜸이다. 도는 돼지, 개는 개, 윷은 소를 상징하고, 가장 점수가 많은 모는 말을 상징한다. 즉 단순한 뜀박질이 아니라 말은 힘과 능력을 의미한다. 그래서 옛날 사대부 집안에서는 자손들의 출세가도를 위해 높은 기상과 청정함을 상징하는 백말 그림을 걸어놓았다. 부부의 인연을 맺는 혼례에서도 말은 빠질 수 없는 동물이다. 단원 김홍도의 풍속화에도 혼례를 치르는 신랑이 백말을 타고 신부집으로 가고 있다. 정조가 한 가난한 신랑이 돈이 없어 혼례를 못 치르는 딱한 사정을 알고 말 한 필을 하사하여 혼례시켰다는 이야기도 같은 맥락이다.
말은 또한 신의(信義)의 상징이다. 즉 나라 사이의 공물에서 빠진 적이 없는데, 두 나라 사이의 신의의 상징이었던 것이다. 단군왕검의 아들이 중국의 우왕에게 홍수를 다스리는 법을 전수할 때에도 그 신의를 저버리지 않겠다는 맹세로 우왕이 백마 피로 제사를 지냈다는 기록이 있다. 고전 《홍길동》에도 도적들이 홍길동을 우두머리로 받드는 과정에서 백마 피를 올려 충성을 맹세하는 대목이 나온다.
이렇듯 동물 중에 말을 상수(上水)로 치는 것은 우리 민족의 말에 대한 신앙과 결코 무관하지 않다. 토속신앙인 무당의 굿거리에는 군마대왕(軍馬大王)이 등장하는데, 이는 곧 힘을 다스리는 무신(武神)이다. 그래서 당골들은 제단에 짚이나 나무로 말 모양을 만들어 올려놓고 있다. 그런가 하면, 말은 서낭신이 타고 다니는 승용차이며, 호랑이를 퇴치하는 사냥마이기도 했다. 남해안 충무지방이나 서산지방의 당집에서 흔히 본다. 그중에서 발가락이 하나 없는 것은 다른 말과의 차별성 때문이 아닌가 한다.
말은 양(陽)을 상징하는 동물로 일찌기 알려져 왔다. 태양이 가장 높이 떠 양기가 가장 충만했을 때를 정오라고 한다. 왕성한 에너지와 정열적인 활동 역시 말의 몫이다. 그래서 우리의 전통적 가부장 사회에서는 일찌기 말을 남성적 동물로 여겨 왔다.
새해 들어 첫 오일(午日)을 '말의 날'이라 하여 말에게 일을 시키지 않고 좋은 음식으로 대접하였다. 상오일에는 장을 담그면 좋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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