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키자!!!
이어도는 우리영토!!!
이어도는 우리해협!!!
이어도는 제주도에 속해있는 땅이다!!!
누가 뭐래도 이어도는 우리땅!!!
누가 뭐래도 독도는 우리땅!!!
이 쌔끼들 우긴다 이렇게~
쭝국놈들=이어도.고구려.백두산 자기네 땅이라고.
쪼빠리들=독도는 자기네 땅이라고...
("몇십년 몇백년 몇천년이 흘러도~
☞그놈의 쌔끼들= (땅 욕심은 변화지 않아)
일본놈 중국놈 왜놈쌔끼 오랑캐놈쌔끼들 "도둑놈 쌔끼들...")
ㅡ "이어도~는 우리땅!!!"ㅡ
이어도 해양기지에대한 발췌기사입니다.
7월 장마철. 제주도 앞바다에서 맑은 날씨를 기대하는 것은 지나친 욕심이었을까. 7월 7일 제주에서 이어도로 가는 해양경찰의 배에 올라탈 무렵 야속하게도 가랑비가 내리고 있었다. 짙게 드리운 안개 때문에 30m 앞을 내다보기도 힘들었다. 파도가 높지 않은 것이 다행이라면 다행이었다.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는 국토 최남단의 마라도에서 150㎞를 더 내려가야 한다. 헬기를 타고 가면 1시간 남짓 걸리지만 배를 타고 가면 무려 8시간이 넘게 걸린다.
▲ 해양기지 헬기장에서 최종 점검을 하고 있다. |
다음날 새벽 6시30분. 짙은 구름 속에서 이어도 해양과학기지가 모습을 드러냈다. 짙은 주홍색 페인트 칠을 한 거대한 구조물은 검붉은 바다색과 어색한 조화를 이루고 있었다. 감리단장 이문재(50)씨는 “주홍색 페인트가 좀 촌스럽죠?”라며 겸연쩍게 웃었다. 이 단장은 “염분이 많은 바다에서 구조물의 부식을 방지할 수 있는 특수페인트”라고 덧붙였다.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는 수중 40m, 수상 36m, 총 중량 3400t에 이르는 구조물이다. 최상부에는 가로 21m·세로 26m에 이르는 헬기 착륙장이 놓여 있었다. 규모로 따지자면 바다 위에 떠있는 12층짜리 아파트인 셈이다. 기지는 해저 지반에 박은 60m 깊이의 기둥 4개 위에 올라서 있다. 기둥을 포함하면 해양기지의 높이는 136m에 이른다. 기지는 최근 100년 간 관측된 최악의 기상조건에서도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공사 현장을 책임지고 있었던 현대중공업 황주현(49) 부장은 “해상구조물 조립작업을 하는데 그날따라 기상 예보에도 없던 강풍이 불어오는 겁니다. 일단 상부 구조물의 다리 4개가 밑구멍에 쏙 들어가기만 하면 공사가 끝나는데 950t짜리 철골이 바람에 이리저리 날리더라고요. 엄청 애를 먹었습니다.”
이어도 해양과학기지는 설계 당시부터 헬기로 접근하도록 만들어졌기 때문에 선박의 접안시설이 없다. 배를 타고 갈 경우, 기지 하부에 설치된 왜소한 철제사다리에 의존해야 한다. 결국 500t급 이상의 큰 배는 암초 때문에 접근할 수 없을 뿐더러 암초를 피하더라도 자칫 잘못하면 기지나 배, 둘 중에 하나가 부서질 수 있다.
▲ 해양기지의 동력원인 태양열 집열판과 헬기장. |
해가 뜨자마자 해경 배에서 구명보트로 갈아타고 기지에 올랐다. 해양기지는 바다 위에 드러난 것만 4층의 구조물이다. 3층에는 연구원들이나 엔지니어들이 상주하면서 연구와 보수공사를 할 수 있도록 침실·화장실·식당·회의실·연구실 등이 있고, 냉장고·TV·세탁기·에어컨·난방기 등 생활시설이 완비돼 있다. 통신은 인공위성을 이용해 인터넷이 가능하고 분당 1천원에 이르는 비싼 통화료를 감수한다면 전화도 사용할 수 있다. 해양 생활의 가장 큰 골칫거리인 식수는 헬기장의 빗물을 받아 2단계 정수시설을 거쳐 사용한다. 결국 기지는 식량만 날라준다면 사람 사는 데 필요한 모든 시설이 완비돼 있다.
취재진이 도착한 7월 8일은 한국해양연구소가 시공업체인 현대중공업으로부터 해양기지를 인수하는 날이었다. 해양기지에는 마지막 점검 작업을 위해 4명의 현대중공업 직원들이 상주하고 있었다.
▲ 연구원이 해양관측 장비를 마지막으로 점검하고 있다. |
지난 4월 17일부터 근 3개월을 기지에서 생활하고 있던 현대중공업의 박종기(48)씨는 “집으로 돌아간다는 생각에 어젯밤 한숨도 못 잤다. 여긴 사람 사는데 불편한 건 별로 없는데 낮에 일하는 것 말고는 할 일이 없으니까 지겨워 죽는 줄 알았다”고 말했다. 박씨는 “여기 한 석 달 처박혀 있으니까 사람이 제일 보고싶다”며 “그 중에서도 마누라가 제일 아쉽더라”라고 말했다.
이어도 해양과학기지 건설은 1995년 현장 해양조사로 시작해 지난달 6월 30일 완공됐으니 무려 8년이 걸렸다. 해양기지에는 오존 측정기, 미세먼지 채취기 등 기상관측 장비 14종(41개)과 초음파 해수면 측정장비, 파랑 측정장치 등 해양관측장비 21종(40점), 기타 구조물 안전성 관측장비 5종(19점)이 설치돼 있다.
이어도 인근은 북쪽에서 흘러드는 한류와 남쪽에서 흘러드는 난류가 만나는 지점으로 조류가 강하게 형성된다. 게다가 한국으로 들어오는 태풍의 40%가 이어도 인근을 지나기 때문에 해양기지는 태풍이 올라오는 철이 되면 몸살을 앓아야 할 운명이다. 그러나 기상과 조류가 급변하고 변덕스러운 만큼 해양기지로서의 가치는 더욱 커진다.
한국해양연구소 심재설(45) 박사는 “이어도에서 태풍이 감지되면 대략 8시간 뒤에 한반도 육지에 상륙하기 때문에 정확한 태풍의 경로, 강도를 측정할 수 있고 중국에서 한반도를 거쳐 일본이나 태평양으로 빠져 나가는 황사도 측정할 수 있다. 해양기지에서 관측된 자료는 무궁화 위성을 통해 안산의 한국해양연구원으로 바로 전송된다”며 “해양기지 덕을 가장 많이 보는 기관은 아무래도 기상청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해양기지 건립공사도 쉽지 않았지만 해양수산부에서 가장 신경을 썼던 부분은 중국과 일본의 반응이었다. 이어도는 중국의 퉁다오(童島)에서 247㎞, 일본의 도리시마(鳥島)에서 276㎞, 우리나라의 마라도에서 152㎞가 떨어져 있어 거리상으로는 한국에서 가장 가깝다. 그러나 한국과 중국 간에 배타적경제수역이 획정되지 않았기 때문에 공사 중에도 중국과 분쟁이 있었다.
1995년부터 8년 간 공사
▲ 해양과학기지의 핵심 시설인 연구실. |
해양수산부 김남철(48) 사무관은 “기지를 건설하는 과정에서 중국측이 2차례 항의해 왔지만 그 때마다 우리의 입장과 법적 정당성에 대해 회신을 보냈다”면서 “해양기지를 건설하기 전부터 이미 국제 해양법상 문제가 될 수 있는 부분에 대해 완벽한 사전 검토를 거쳤기 때문에 별다른 문제가 없을 것으로 본다”며 자신감을 내보였다.
한국은 이미 1987년 8월부터 이어도에 등부표(지나가는 배에 암초가 있음을 알리기 위해설치된 점멸기가 부착된 부표)를 설치하고 관리해 왔다. 이어도는 섬이 아니라 해수면 밑 4.6m에 있는 수중암초이기 때문에 해양의 경계를 설정할 때는 아무런 의미가 없다. 그러나 파도가 높은 날엔 인근을 지나다니는 배가 이어도에 부딪혀 조난 당할 위험이 크기 때문에 우리나라에서 관리를 해 왔던 것이다.
한국해양연구원 권문상(49·해양법 전공) 교수는 “한국과 중국의 배타적경제수역이 겹치는 이어도 인근 해역은 아직 해양경계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는 않았지만, 중간선(영해가 겹칠 때 겹치는 부분의 중간선을 수역의 경계로 삼는 방식)을 경계로 삼는 국제법상의 관례에 비춰볼 때 당연히 대한민국의 관할지역에 속한다”며 “해양과학기지를 건설한 이상 중국도 더 이상 할 말이 없을 것”이라고 강조했다.
▲ 아래에서 바라본 이어도 해양과학기지의 모습. |
이어도 해양기지는 무인기지로 설계돼 있다. 해양기지에서 측정된 자료들은 무궁화 2호 위성을 통해 해양연구원으로 자동 전송되고 원격조종되기 때문에 사람이 상주하지 않아도 된다. 다만 해양연구원에서는 한해에 2차례 정기적으로 방문해 집중연구를 실시하고, 부정기적으로 구조물 안전점검을 위해 방문할 예정이다.
해양기지에 상주하는 사람이 없다보니 기지에 외부인이 침입할 경우에는 대응하기 곤란해진다. 기지 건설 기간 동안 이어도 인근에서 생활했던 현대중공업 황주현 부장은 “요즘은 장마철이기 때문에 많이 보이지 않지만 공사 기간 중에는 중국 어선들이 자주 나타나 현장 기술자들이 긴장하곤 했었다”고 말했다. 물론 침입자가 있을 경우에는 자동적으로 경보가 울리고 해양연구소에서도 알아차릴 수 있다. 또 사람이 없을 때에는 밑에서 올라오는 계단을 위로 올려 놓기 때문에 기본적인 안전장치는 갖추어져 있다.
이어도 해양과학기지의 건설은 우리나라 최초로 먼바다에 과학기술기지를 보유하게 됐다는 의미가 있다. 또한 국토 최남단 마라도에서 150㎞나 떨어진 곳에 총건설비 212억원을 들여 400평(기지의 연면적) 규모의 우리땅을 만들었다는 점도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돈으로만 따진다면 1평에 5300만원을 들여 바다 위에 땅을 만든 셈이다. 이 땅이 어느 정도의 값어치가 있을지는 어떻게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
'이어도 사나~'하는 민요는 다들 들어보셨을 겁니다. 제주도에서 전설로만 내려오던 섬 이어도는 제주 남서쪽 152km에 있는 물밑의 섬으로 제주도에서는 이어도에 가면 불로장생한다는 속설이 있었지만, 가라앉아서 전설로만 내려오고 해저 4m에 위치하고 있어 현대에는 볼 수없는 섬입니다.
지금 해양과학기지가 완성되어 연구원들이 위치하고 있는 명백한 우리땅이고 우리의 영해와 EEZ를 태평양 근처로 이어주는 중요한 섬입니다. 이제 중국이 이어도를 인정할 수 없다니 우리는 독도도 잃고 다 잃고 일본 중국에 갇혀서 대양인 태평양과 단절되는 느낌마저 듭니다. 안됩니다 이어도는 우리땅입니다
전설의 섬 이어도에 세운 과학기지 중국 "이어도에서의 한국 일방행동 인정 못해" 정부 당국자 “해양기지 운영 정당한 권리” 정부 당국자는 14일 중국 정부가 이날 이어도에서 벌이는 한국측의 일방적인 행동은 아무런 법률적 효력이 없다고 밝힌 데 대해 “이어도 수역은 한국측에 근접한 수역인 만큼 우리가 명백한 권리를 갖고 있다”고 반박했다. 친강(秦剛) 중국 외교부 대변인은 이날 정례 브리핑에서 “쑤옌자오(蘇岩礁.이어도의 중국명)는 (국제법상 섬이 아니라) 동중국해 북부의 수면 아래에 있는 암초”라면서 제주도 서남쪽 이어도에서 이루어지는 한국측의 행동이 아무런 법률적 효력이 없다고 말했다. (chosun.com) 2006.09.14
심재설 박사 "이어도기지 우리 수역 알리는 役 톡톡"
해양연구소 이어도기지 책임자
年 20만척 근해 지나… 태풍 길목서 무인 기상관측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는 이곳이 우리나라의 엄연한 관할수역임을 국제사회에 널리 알려온 매우 소중한 시설입니다.”
한국해양연구원 연안방재연구사업단의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무인기지) 연구책임자인 심재설(48) 박사는 15일 할 말이 많았다는 듯 이어도 이야기를 쏟아냈다. 흔히 바다 속 ‘전설의 섬’으로만 알던 이어도에 우리나라 과학기지가 있다는 사실은 최근 중국의 감시 비행에 의해 우리 국민에게 알려졌다. 이어도 기지는 바다 속에서부터 수면 위로 지어올린 해상설비로 각종 관측장비와 통신, 운송, 임시주거시설을 갖추고 있다.
심 박사는 “이어도 기지 근처를 지나는 배가 연 20만척이 넘고 이곳의 데이터를 이용한 논문을 국제 학술지에 지속적으로 보고해왔기 때문에 한국홍보 역할을 톡톡히 하고 있다”고 말했다. 최근 중국이 우리나라의 관측활동을 반대하는 것에 대해 그는 “중국과 배타적경제수역(EEZ) 획정 협정을 가져야 하지만 이어도는 마라도로부터 149㎞, 중국의 퉁다오(童島)로부터는 245㎞ 떨어져 있어 중간경계를 그을 경우 우리나라에 속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반박했다.
그는 “1995년부터 200억원을 투입, 8년 만에 이어도 기지를 준공했는데 관측장비의 센서만 외국 것을 도입했고 나머지는 모두 우리 기술”이라고 자랑했다. 이 기지의 가장 큰 임무는 기상 관측이다. 우리나라 태풍의 40%가 통과하는 태풍의 길목이기 때문이다. 이밖에 황금어장인 주변의 어종을 연구하기 위한 시설, 등대 및 수색 전진시설로서의 역할도 해 왔다. 자동으로 수집되는 데이터들은 10분마다 통신위성을 통해 심 박사가 있는 경기 안산시 해양연구원으로 들어오고 바로 해양수산부 기상청 해양경찰청 등으로 뿌려진다.
심 박사는 이어도 기지와 애환을 함께 했다. 2003년 9월 기지의 관측시스템을 시험운영하고 있을 때의 일이다. 우리나라에 기록적 피해를 준 태풍 매미가 북상하는데 갑자기 시스템이 다운됐다. 심 박사는 기지 완공 후 첫 태풍예보에 기여할 욕심에 연구원 3명을 내려보냈다. 하지만 아무리 기다려도 연락이 없었다. 눈 앞이 캄캄해진 심 박사는 “내가 못할 짓을 했다”고 자책했다. 예정시간을 몇 시간 넘겨서야 “시스템을 복구했다”는 연락이 왔다. 심 박사는 “당장 뭍으로 나오라”고 소리친 뒤에야 가슴을 쓸어 내렸다.
해양연구원의 연구원들은 1~2개월마다 기지에 가서 장비를 점검한다. 심 박사도 분기마다 한 번은 이곳에 들른다. 하지만 ‘전설의 섬’을 오가는 일은 말처럼 쉽지 않다. 제주에서 작은 어선을 타고 7시간을 가야 닿을 수 있는데 조금만 파도가 높아도 뜰 수가 없다. 큰 배는 접안이 불가능하다. 잘 알려진 대로 이어도는 바람이 거칠게 불면 드러나는 얕은(수심 4.6m) 암초섬이기 때문이다.
심 박사는 “축적된 기술을 활용해 제2, 제3의 해양기지를 짓는다면 해양자원개발에 큰 기여를 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해양수산부는 내년 이어도 기지를 한국해양연구원에서 국립해양조사원으로 이관할 방침이다.
김희원 기자 hee@hk.co.kr
2006년 9월 15일 (금) 11:25 쿠키뉴스
"이어도가 암초라고? 그곳엔 한국의 정서가 있다…전설·문학·음악에 담긴 이어도..."
구전민요 ‘이어도 타령’에 등장하는 전설의 섬, 이어도에 때 아닌 관심을 쏠리고 있다. 중국 정부가 14일 이어도에 대한 한국 정부의 법률적 지위를 인정할 수 없다고 공개적으로 밝힘에 따라 외교통상부가 정면으로 반박하고 나섰다.
중국은 이어도가 양국의 배타적경제수역(EEZ)에 모두 포함된다며 한국이 이어도에 설치한 해양관측소를 문제삼아 왔다. 이어도 부근 수역은 대륙붕으로 풍부한 해양 자원을 갖고 있다.
해양전문가들은 일본과 가스전 이용 문제로 갈등을 빚고 있는 중국이 해양 자원 확보를 위해 이어도 문제를 제기한 것으로 분석했다. 유엔해양협약에 따르면 암초는 영토로서 법적 지위를 갖지 못해 한·중 영토분쟁으로 비화될 소지는 적다는 관측도 나온다. 분쟁의 암초, 이어도의 정체는 무엇인가.
◇ 이어도는 ‘섬’이 아니다?
‘전설의 섬’으로 불리지만 이어도는 동중국해 중앙 북위 32도 07분, 동경 125도 10분에 위치한 수중 암초다. 제주도 최남단 마라도에서 서남방으로 149km, 일본의 도리시마(鳥島)에서 서쪽으로 276km, 중국의 퉁타오(童島)로부터 북동쪽으로 245km 떨어져 있다. 한·중·일 3국 중 우리나라와 가장 가깝다.
이어도의 가장 얕은 곳은 해수면 아래 약 4.6m 지점에 있다. 수심 40m를 기준으로 하면 남북으로 600m, 동서로 750m로 면적이 약 11만5000평이다. 정상부를 기준으로 남쪽과 동쪽은 급경사를, 북쪽과 서쪽은 완만만 경사를 이루고 있다.
이어도는 1900년 영국 상선 소코트라(Socotra)호가 처음 발견해 그 선박의 이름을 따 국제적으로는 ‘소코트라 암초(Socotra Rock)’로 불리고, 제주도 전설에는 ‘파랑도’란 이름으로 등장한다.
우리나라에서 처음 이어도를 인식한 것은 1951년이다. 국토규명사업을 벌이던 한국산악회와 해군이 이어도 탐사에 나서 바다 속 검은 바위에 ‘대한민국 영토 이어도’라고 새긴 동판표지를 세웠다.이후 1987년 해운항만청이 이어도 등부포(선박 항해에 위험한 곳임을 알리는 항로표지 부표)을 설치해 국제적으로 공표했다.
◇ 암초 위에 세운 미래,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
이어도 종합해양과학기지는 최악의 조건을 극복하고 세계적으로 육지로부터 가장 멀리 떨어진 지점에 세워진 해양구조물이다. 한국해양연구원이 1995년부터 수심, 조류 등을 관측해 해양조사에 들어간 이후 2002년 하부구조 설치를 완료하고 2003년 5월에 상부구조를 세운 뒤 같은 해 6월11일 준공식을 가졌다.
이어도과학기지는 암초로부터 77.5m, 수면 위로부터 36.5m 높이에 400평 규모로 건설됐다. 이는 24.6m의 파고와 초속 50m의 강풍에 맞서 50년 이상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됐다. 특히 준공 직후인 2003년 태풍 ‘매미’가 찾아왔을 때도 끄떡없이 버텨내 화제가 됐다.
이어도과학기지 헬기장에는 위성통신 안테나와 등대, 그리고 전원을 공급하는 태양전지판이 설치돼 있다. 또 최첨단 기상관측장비 13종, 해상관측장비 20종, 환경관측장비 6종, 구조물 안정성 계측장비 4종 등 400평 기지 안에 촘촘히 배치된 장비들로 데이터를 수집·분석해 육상으로 전송한다.
이곳에서 관측된 각종 자료는 무궁화위성을 통해 경기도 안산에 있는 한국해양연구원과 기상청에 실시간에 제공된다. 한반도를 경유하는 태풍의 40%가 이 길목을 지난다. 이곳을 지난 태풍이 10시간 뒤 남해안에 도달하기 때문에 기상예보의 정확성을 높여 재해 예방의 큰 도움을 주고 있다. 예보 뿐 아니라 지역해양연구 기초자료 수집, 안전 항해를 위한 수색전진기지 역할도 충실히 수행한다.
◇ 한국문학의 ‘이어도’… 인간을 위무(慰撫 )하는 피안의 세계
이엿사나 이여도사나 이엿사나 이여도 사나/ 우리 배는 잘도 간다 솔솔 가는 건 솔님의 배여/ 잘잘 가는 건 잡남의 배여 어서 가자 어서 어서 / 목적지에 들여 나가자 우리 인생 한번 죽어지면/ 다시 전생 못하나니라 원의 아들 원자랑 마라/ 신의 아들 신자랑 마라 한 베개에 한잠을 자난 / 원도 신도 저은 데 없다 원수님은 외나무 다리/ 질은 무슨 한질이든고 원수님아 길막지 마라 / 사랑 원수 난 아니노라
작자 미상의 ‘이어도 타령’은 바다에서 일하는 해녀들의 노동요다. 어촌에서 바다로 나가 일하다 목숨을 잃는 남편 대신 생계를 꾸려야 하는 해녀의 삶과 애환이 담겨 있다. 해녀들에게 가장 큰 적은 풍랑과 같은 자연재해다. ‘원수님’은 길을 막지 말고 비키라는 내용에서 해녀의 강인한 개척정신을 엿볼 수 있고, 마지막 부분의 ‘사랑도 원수도 난 아니노라’에서는 해녀의 초월적 심경이 집약적으로 나타나 있다.
이어도 타령의 사설은 직설적, 역동적이다. 4·5조 형식과 반복법은 드센 억양과 생동감을 불러일으키는 특징이 있다. ‘이엿사나 이여도사나’ 는 노를 저을 때 나는 여음이다.
이청준이 1974년 9월에 발표한 중편소설 ‘이어도’는 이어도를 소재로 한 대표적 문학작품이다. 제주 출신 기자 천남석이 파랑도 탐사를 떠났다가 자살한 과정을 동료 기자들이 수색하면서 밝히는 내용이다. 이청준은 작자의 말에서 ‘대개 문학작품에 나타난 피안(彼岸)의 이상향이란 현세의 모든 고난과 갈등에서 해방된 복락의 땅으로 그려진다. 이어도는 제주도 뱃사람들에게 이상향이자 동시에 죽음의 섬이기도 하다’라고 했다.
이 소설은 환상의 섬으로 여겨지는 이어도가 제주 사람에게 주는 위안과 가치를 그린 것으로, 죽음을 통해 섬의 존재를 증명하는 역설적 기법이 돋보인다는 평가를 받았다. 이청준은 이 작품을 통해 한국일보 창작 문학상을 수상했다.
◇ 대중문화 속에도 우뚝 선 ‘이어도’… 다양하게 표출되는 한(恨)의 정서
‘흰옷을 입은 사람들 피리소리 북소리에 젖어 / 여름날에 축제는 한창 시원한 하늘 밑에 누워 품 속에 안아지키던 흰 새는 여럿이 돌아와/심어놓은 초록빛 씨앗 보라빛 열매 맺으리/ 이어도의 꿈 속에 사람들과 어우러/이어도의 꿈 속에 님의 웃음 안으리 덩실덩실’
싱어송 라이터 이상은의 12집 ‘Roman Topia’ 10트랙에 실린 곡이다. 여기서 이어도는 낭만적 사랑이 충만한 세계, 몽환적 판타지가 넘쳐나는 유토피아로 그려진다.
‘떠나가면 돌아오지 않는/섬으로 부는 바람은 배를 띄운다/ 이어도 하라 이어도 하라/ 이어 하면 눈물 난다/내 님은, 내 님은 남기고 떠난 내 님은 보이지 않네 / 이어도 하라 이어도 하라/ 이어 하면 눈물이 난다 ’
한영애 3집의 7번 트랙 ‘이어도’는 한영애 특유의 허스키 보이스로 님을 잃은 슬픔을 절절하게 구사한다.
중앙대 국악 밴드 ‘중앙컬처밴드 원’은 한국 전통악기와 리듬을 차용해 밝고 경쾌한 느낌의 가락으로 이어도를 표현했다.국악과 모던 반주를 접목을 시도한 것. ‘이어도’를 들은 한 네티즌은 “전통가락과 바다의 역동이 어우러져 마치 지금 이어도에 와 있는 것 같다”고 감상평을 남겼다.
국립국악원은 1931년 제주 세화리의 일제 강점기 항일운동인 해녀항쟁을 소재로 한 ‘이어도 사나’ 제주소리굿을 2004년 공연했다. 돈을 벌기 위해 일본으로 떠났던 해녀 순이가 결국 빚만 진 채 고향에 돌아와 일본인의 괴롭힘을 당하다 바다에 몸을 던져 죽는 내용이다. 극을 구성하는 제주 민요와 굿을 통해 삶과 한을 응축해 표현했다는 평가를 받았다.국민일보 쿠키뉴스 구민지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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