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족관*/송(宋)씨의 방

[스크랩] 송대오대명요-여요(汝窯)

하루를 일년처럼 2008. 11. 29. 20:42

송대문화는 중국고대사회에서 공전절후의 높은 수준을 간직하고 있었다.

송대 도자기는 송대문화의 주요구성부분이었으며 兩宋문화의 찬란한 떨기 진귀한 꽃이었다.

송대 도자기는 당시의 해외무역에서 세계를 풍미했던 명품브랜드였다. 송대 자기는 민요(民窯)와 관요(官窯) 구분된다.

 

관요라 하는 것은  중앙정부에서 관리하는 요를 말하는 것이며 전적으로 황궁왕실에서만 사용되는 자기만 만들었으며,

민요라 하는 것은 민간인이 운영하는 요로써 민간에서 사용하는 그릇을 생산하였다. 관요 자기는 원가를 따질

없을 정도로 가치가 있는 그야말로 완벽한 정교함을 추구했고,요가 있던 지역에서의 생산 기술은 엄격한 기밀사항이었다,

 

공예 또한 아름다움의 극치였으며 전해져 오는 자기 모두 희귀한 진품들이다. 이에 반해 민요는 당시에 주로 실용적이며

사용가치가 있는 용도에 치중하였고 생산도 원가를 고려해야 했다. 사용했던 원료는 관요에 비해 그렇게 철저하지 않았다.

그러나 민요중에도 훌륭한 작품이 많았다..양송 시대의 도자기관련 문헌에는 민요의 이채롭고 아름다움을 언급했던

부분이 많이 있다. 민요는 관요와 서로 어울려 더욱 빛났고 다채롭고 성대하여 장관이었다.

 

송대 자기를 만드는 지역을 기준으로 손꼽을 있는 것은 여요(,) 관요(官窯), 가요(哥窯), 균요(鈞窯), 정요(定窯)이며

후대에 이를 송대오대명요(宋代五大名 ) 칭했다

 

여요(汝窑)

여요는 북송후기의 송휘종 년간에 만들어졌던 관요이다. 오대 명요중에 첫번째로 꼽는다.

여요는 청자를 위주로 하였고 유약색에는 분청, 두청, 란청, 와청등이 있으며 여요도자기의 태체는 비교적 얇고

유약층은 비교적 두텁다. 옥석 같은 질감이 있고 유약표면에는 아주 잘잘하게 균열조각이 보인다.

여요자기는 지정지요법()을 사용했는데 자기  밑바닥에 작고 가는 못을 박은 흔적이 남아있다.

,物은 대부분 고대 청동기 양식을 본떴는데 세(洗),(),(),()위주였다.

지금까지 전해져 오는 여요 작품은 100건에도 못 미치기 때문에 대단히 진귀하다.

여요 자기의 가장 우수하다고 평가되는 점은 그 유색(釉色)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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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 차 한잔의 미학
글쓴이 : 으름꽃핀언덕 원글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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