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7. 29. 이른 오후
또 무슨 약속이 남아 있다한들 그 어쩌리.
생각은 뒤로 남기고 떠난다.
전남 고흥 두원면 운대리의 운암산 수도암
벌교에서 운대 교차로를 지나
운곡마을에서 잠깐 쉬며 물어 물어 찾은
수도암 가는 길이다.
울창한 여름 사이로 뻗은 길은
곧장 수도암으로 이어진다.
옛길은 사람의 길이요
오늘날의 길은 차를 위한 길인데
옛길을 찾지 못했으니 터벅터벅 찻길을 걷는 수밖에 없다.
장수하늘소가 시멘트 바닥 위에서 괴로워하고 있다.
바로 걷게 해 주려고 애를 썼으나
한쪽 다리가 꺾여 있어 바로 서질 못하고 금방 뒤집어지고 만다.
미물일지언정 알 수 없는 업에서 벗어나길 바라며
숲속으로 자리를 옮겨주고 돌아서 가는 걸음이 무겁다.
나는 제대로 걸어가고 있는가 하는 궁금함이 풀리기도 전에
수도암이 언뜻 비친다.
구름 위 바위너럭에 자리잡은 수도암
먼 곳을 찾았음에도
답을 모를 때는
그저
나무아미타불 관세음보살
짙은 푸름에 함께 물들 수만 있다면
더는 다른 물음을 청하지 않아도
지금 이 자리는 좋고 좋은 것.
조계종 제21교구 본사 송광사의 말사인 운암산 수도암.
통일신라 흥덕왕 때 영헌스님이 창건했다는 설과
고려 공민왕 19년 영허선사가 창건 했다는 설 등이 있으나
아직 정확히 밝혀진 것은 없다.
무루전
무루... 텅 비었으니 윤회할 티끌조차 없는 나한들의 집
출입금지 구역인 선방 지붕 위에 깊숙한 굴이 하나 보인다.
참배하고 싶었지만 마음의 붓으로 연꽃 한 송이 그려 바치고 돌아선다.
하안거 중이라 스님들의 기척조차 찾을 수 없다.
언제 찾아도 마다 않는 부처님께 삼배 드리고 눈 한 번 맞춘다.
군데군데 정성스레 가꿔놓은 채소들이 인기척을 대신 한다.
구름인양 지붕 위에서 노닐다가
계단을 따라 내려왔다.
사방 어느 곳에서도
문이 열리지 않는 이름없는 전각을 만난다.
애써 보지만 열리지 않는다.
밖의 몸을 다 사루어 원하던 것.
어떻게 문을 열 것인가!
길밖으로 나온 붓다께 묻는다.
어떻게 문을 열지요?
바보.... 안에서 열면 될 것을....
잠자리들이 내려 앉는다.
잠자리가 쉴 수 있었던 것은
내려앉은 그 자리가 고요해서가 아니라
잠자리, 그 스스로가 고요해서이다.
잠자리 날려 버리고
수도암을 내려온다.
시원한 계곡 물 소리에
폭염조차 잊는다.
구름 정거장, 운암산 수도암
이정표 앞에서 잠깐 호흡을 고른다.
길은 또 길로 이어지며 끝이 없을지니
윤회의 이 길에서도 크게 살고 싶다면
더이상의 근심은 무의미하다는 걸 알아야 할텐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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