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앵커멘트]
조선 초기에 조성된 묘에서 당시 복식상태와 장묘문화를 알 수 있는 의상이 원형 그대로 나와 학계의 관심을 끌고
있습니다.
대전에서 이광옥기자가 보도합니다.
[리포트]
대전시 목달동 송절마을 뒷산에서 64살 남세현씨가
13대 외조부의 묘를 이장하는 과정에서 발굴된 조선 초기시대의 미라입니다.
수의를 한겹씩 벗겨내자 피부가 그대로
드러납니다.
미라의 주인공은 세종때 통훈대부를 지낸 송희종으로 수염과 머리카락, 치아가 생전 모습대로 남아
있습니다.
이렇게 시신과 수의 등이 완벽하게 남아 있을 수 있었던 것은 내관과 외관으로 이뤄진 충청지역의 전통적 분묘구조
때문입니다.
[인터뷰:유용환, 대전시 학예연구사] "바깥에는 회곽이라해서 생석회하고 모래 고운 황토를 1:1:3의 비율로
섞으면 생석회가 바위처럼 굳어져 무덤안이 잘 보존됩니다."
무덤안에서 나온 옷가지는 수의를 비롯해 염습에 사용된 이불과 요, 그리고
관의 빈곳을 채운 보공품인 생활복 등 30여벌에 달합니다.
400여년이 훨씬 지났지만 이들 옷가지는 지금도 사용할 수 있을 만큼
거의 완벽한 상태입니다.
[인터뷰:유용환, 대전시 학예연구사] "상례에 관계됐던 의례복과 복공품으로 나온 생활복식은
1600년대의 의생활 풍습을 알수 있는 결정적인 자료입니다."
또 바로 옆 송씨의 아내 순흥 안씨의 묘에서도 미라 상태의 시신과
부장품 등이 훼손되지 않은 상태에서 발굴되는 등 조선 전기 복식사 연구에 귀중한 자료로 평가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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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토된 조선전기 미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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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일 오후 대전시 중구 목달동 송절마을 뒷산 고성남(64)씨의 13대 외조부인 여산 송씨(송희종.세종 때 정3품 어모장군)의 묘 이장작업
도중 머리카락과 옷 등이 그대로 보존된 송씨의 미라가 발견돼 대전시 문화재 관련 직원들이 조사를 벌이고 있다./조용학/지방/문화/행정/
2004.5.20 (대전=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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